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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_고정희조경설계연구소 소장
1600년 경 프랑스의 젊은 왕 샤를 8세는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르네상스 정원에 대한 감동을 전리품처럼 지니고 돌아오게 된다. 그 때부터 프랑스식 르네상스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식 정원, 후에 바로크 정원으로 불리는 것을 독립된 양식으로 보지 않고 르네상스의 연장선에 두고 보려는 관점도 존재한다. 바로크 정원이 르네상스 정원에서 발전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무대가 바뀌면서 휴머니즘에서 절대왕권으로 시대정신도 바뀌었고 절대 군주가 이루어 놓은 바로크 정원은 아무리 외형상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토스카나의 언덕에서 한가로이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휴머니스트들의 정원과 결코 같은 것일 수는 없다. 더욱이 토스카나의 구릉지와 전혀 다른 파리의 지형적 조건도 바로크 정원이 독자적인 길을 가는데 크게 한 몫을 차지한다. 평지로 이루어진 파리에서는 테라스와 캐스케이드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캐스케이드는 연못과 수로로 변하고, 테라스의 자리는 ‘파르테르parterre’라는 사각형의 잔디밭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후 좌우대칭으로 엄격히 배치된 파르테르가 바로크 정원만의 특징이 된다. 바로크 정원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파르테르를 얼마나 변화 있고 조화롭게 배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정원 전체의 공간구조와 균형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충실하기 위해 통제가 잘 안 되는 꽃들을 배제하고 대신 회양목으로 복잡한 문양을 만들어 파르테르를 장식 했으며 색의 조화를 주기 위해서 모래를 채색하여 썼다. 이 방식은 훗날 포스트모더니즘 정원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르 노트르의 작품인 보르비 꽁트Vaux le Vicomte에서 엿보이는 파트테르의 대위법. 이 정원은 베르사이유 정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1641-1653). 루이 14세의 재상이었던 니꼴라 푸케의 개인정원인데, 왕의 정원보다 더 화려한 이곳에 왕을 초대한 것이 화근이 되어 그의 경력이 끝나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루이 14세가 르 노트르를 불러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라고 명령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베르사이유가 탄생한다.
베르사이유 정원의
중심축과 아폴로 분수
파르테르의 채색된 모래.
베를린 샤를로텐부르그 궁
베를린 샤를로텐부르그 궁.
베르사이유를 모델로 한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힌다. 규모가 작아서 작은 베르사이유라 불리기도 한다.
하노버의 헤렌하우젠. 감상하는 재미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는 베르사이유를 능가하지만 엄숙성과 추상성은 떨어진다.   그로스 제들리츠. 파르테르에 물을 직접 배치하여 움직임을 주고 정원 전체를 타원형으로 만든 파격적인 바로크 정원.
사실 유럽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정원양식이 바로크 정원이다. 르네상스 정원은 시대적으로 앞섰기에 소멸된 것이 많고 또 후세에 등장한 바로크 정원에 흡수되어 버린 것도 적지 않다. 어딘가 전원의 정취가 배어있는 르네상스 정원과는 달리 왕과 영주의 정원인 바로크 정원에서는 도시적 세련미와 추상성을 엿볼 수 있다. 바로크 정원의 걸작은 누가 뭐래도 베르사이유 정원이다. 하노버의 헤렌하우젠이 아름다움이나 정원 체험의 재미로 본다면 오히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으나 베르사이유 정원이 가지는 근엄함과 엄격함은 다른 어느 바로크 정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절대성은 우선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규모에서 시작된다. 중앙 가로수 길의 길이만도 2.5km에 이른다. 이 길은 수로로 연결되고 이 수로가 다시 가로수 길로 연결되면서 지평선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직선을 이루는데, 테라스 위에 서면 이 중심축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정원 전체가 완벽히 ‘통솔’되고 있다. 얼핏 일직선을 그리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포츠담의 쌍쑤시 궁을 보면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이 증명된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궁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경우 아래쪽 정원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궁의 전체 모습이 보이도록 경사도를 제대로 잡아야 하는데 쌍쑤시에서는 이 점에 실패하고 있다. 바로크 정원이 완성되면서 서구 조경계의 주권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완전히 넘어간다. 내로라하는 유럽의 영주 라면 누구나 베르사이유를 갖고 싶어 하여 다투어 프랑스 정원예술가를 불러 들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 바로크 정원의 영화도 어쩔 수 없이 빛을 잃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새로운 영감을 주지 못하는 것에 사람들은 싫증을 내기 마련이다. 쌍수시에서 후기바로크, 즉 로코코로 다시 한 번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이미 시작된 계몽주의의 돌풍에 밀려 사그라지고 만다. 정원 계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고정희, 서구 근대조경의 탄생과 변화,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나무도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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