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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사백년사 단숨에 훑어보기 고정희_고정희조경설계연구소 소장
일반 서양사에서 다루는 근대, 즉 모던타임은 중세이후 르네상스부터 오늘까지를 포괄한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근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전후하여 발생한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모더니즘이라 하기 때문에 양자 간에 혼동이 오기 쉬워 20세기부터를 편의상 현대라고 칭하기는 것이 보통이다. 서구 조경이 제대로 꽃피우기 시작한 것 역시 근대의 시작인 르네상스부터이다. 그 전 중세의 정원은 대개 수도원에 속해 있었다. 이는 신과의 은밀한 대화의 장소로서 세상과 격리된 폐쇄적 공간이었다. 중세건축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방어위주의 폐쇄성이라는 것인데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배당과 수도원 모두 높은 담으로 에워 싸여 밖에서는 정원의 존재조차 짐작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건축과 정원의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된다.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던 일방적인 시각이 땅으로 향하고 건축과 정원이 이생의 꿈과 삶을 담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중세의 폐쇄적 건축. 높은 축대와 담을 쌓아 하늘에 가까우나 인간에게는 멀어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르망디의 몽생미셸 수도원 중세의 수도원 정원. ㅁ자로 된 중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수도승들이 신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거닐던 곳. 속세의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곳이다.
‘근대 조경의 탄생과 변화를 개관’하는 것은 결국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의 출발까지 조경사 사백 오십년의 역사를 훑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정치와 전쟁의 역사와는 달리 사백년이 넘는 동안 정원은 단지 세 번의 커다란 변화를 겪었을 뿐이기 때문에 비교적 그 흔적을 명료하게 읽어 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구 근대조경의 역사는 르네상스 정원을 출발로 하여 그 뒤를 이은 바로크 정원과, 바로크 정원의 안티테제로 등장하는 풍경식 정원이라는 순으로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 무대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형태론적으로 따져본다면 서구 조경의 역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지배했던 ‘기하학적’ 양식과 풍경식 정원이 대표 하는 ‘자유로운’ 양식 사이에 벌어졌던 주권다툼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연스러움이라 하지 않고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8세기, 지나치게 형식적인 바로크 정원의 굴레에서 벗어나―실제로는 절대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 계몽주의의 자유정신의 상징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자연을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보다 자유가 주제였었음을 분명히 해두자. 20세기에 들어와 자연이 몹시 파괴된 후에야 자유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서구 근대조경사는 조경이 아닌 정원의 역사

조경의 역사를 논한다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정원’을 들먹이는 이유를 이 자리에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우리말의 조경이라는 단어는―짐작컨대 영어의 landscape architecture를 번역한 것은― ‘경관’의 뜻을 내포하고 있고, ‘만든다’ 라는 행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조경을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고 하는 등의 무언가를 하는 행위들이 우리의 직업에 멍에처럼 얹혀 버리게 된 것이다. 조경디자이너라는 호칭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정원garden은 이런 모든 행위가 낳은 총체적인 결과물을 일컫는다. 행위가 아닌 존재인 것이다. ‘정원을 만든다’라고 하면 이런 총체적인 산물을 창조하는 ‘작업’으로 이해되어 진다. 살아있는 소재를 써서 땅위에 인위적으로 만드는 공간예술의 산물, 즉 창조의 산물이 정원이라면 구태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즉 존재하는 경관을 복사할 필요는 없다. 경관과 비슷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실존하는 경관과 확실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부터 적어도 19세기 중엽까지 서구의 정원은 경관의 복제품이 아닌 독자적인, 분명한 예술적인 의도를 품고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바로크 정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듯반듯 자로 잰 공간의 구조와 좌우를 지휘하는 축, 대위법과 황금률에 의해 결정되는 선과 면의 비율. 이 모든 것이 자연경관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네모진 잔디밭은 디자인의 요소란 것 외에 다른 아무런 존재이유가 없다. 물이 순리에 맞게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분수가 되어 위로 솟구치고. 식물은 자르고 깎은 조형물이었다. 베르사이유 정원을 디자인한 전설적인 인물 르 노트르는 그의 정원에서 꽃을 철저히 배제하였었다. 절대왕정의 무한한 권위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로서의 정원에 꽃은 솔직히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왕의 처소에 속한 작은 뜰에 아이들과 유모들을 위해 꽃을 수놓은 자수화단을 배치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타협을 한 것이다. 이 한 점의 티를 제외한다면 완벽했을 베르사이유 정원의 추상적 미학에 온 유럽이 푹 빠져들게 된다. 순식간에 북쪽의 스웨덴까지 점령하게 되는데, 어느 군주가 이렇게 평화로운 방법으로 온 유럽을 통일할 수 있었던가. 정원이 ‘자연경관 혹은 풍경을 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훨씬 뒤 18세기 영국의 젠트리들이 만들어 낸 소위 풍경식 정원landscape garden에서 였다. 알고 보면 풍경식 정원도 이름뿐이고 실존하는 경관 혹은 풍경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상상 속의 이상향의 재현이었고 바로크의 절대적 추상성에 반하여 개인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느낌의 장면’들을 조심스레 연출한 거였다. 거대한 예술작품이라는 데는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때 처음으로 경관landscape이라는 말이 정원과 관련하여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그냥 경관이 아니라 가든이 뒤에 붙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이 만든 것은 경관이 아니고 ‘경관을 닮은 정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백만 평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것이라도 원칙적으로는 정원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 우리 얘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조경의 역사가 아닌 정원의 역사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출처: 고정희, 서구 근대조경의 탄생과 변화,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나무도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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