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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Arcadia 고정희_고정희조경설계연구소 소장
르네상스와 바로크 정원이 귀족과 영주들의 정원이었다면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시인과 철학자들이 만든 정원이었다. 일반 대중이 조경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20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같은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바로크에서 풍경식 정원으로의 전환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다. 16세기부터 영국과 베니스 양국 사이에 교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헌데 교류라고는 하나 실은 영국의 인텔리 계층이 이탈리아로 문화여행grand tours을 다녀오는 일방통행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탈리아를 다녀와야 대화상대가 된다는 분위기였는데 셰익스피어가 극의 무대를 종종 이탈리아로 옮긴 데에는 이런 배경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국의 엘리트들은 그 곳에서 접해 본 고대문화에 깊이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화가 끌로드 로랭의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우리들도 익히 알고 있는 로랭의 유명한 풍경화들은 사실 실제의 풍경을 묘사했다기보다는 다분히 이상화된 장면들을 보여 준다. <아침 정경>이나 <이탈리아 풍경> 같은 그림 속에 목동과 양과 소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이런 소위 목가적 풍경은 다시금 고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고 이것을 일컬어 아르카디아라고 했다. 유럽인들은 아쉬울 때마다 고대로 돌아간다. 로랭의 화폭에 담겨진 목가적 풍경, 즉 아르카디아야 말로 영국 엘리트들이 찾고 있던 이상향인 것처럼 보였다. 마침 바로크의 직선과 좌우대칭이 슬슬 지겨워지던 무렵이었다.
클로드 로랭의 이탈리아의 풍경. 이 그림에서 이탈리아의 풍경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 믿으면 안 된다. 노래로 듣던 다분히 이상화된 목가적 풍경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고대의 신전이 멀리보이는 등 사실이 아닌 꿈과 이야기를 풍경에 담아내던 낭만주의 풍의 그림이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에 실재하는 지명이다. 목동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자갈밭에 가까운 거친 환경이어서 시인 들이 노래하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아르카디아를 노래하며 그곳이 마치 에덴동산인 것처럼 묘사한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르카디아가 낙원 혹은 이상향의 대명사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풍경식 정원은 이 아르카디아를 실제로 재현하려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718년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자신의 영토에 최초로 풍경식 정원을 만들게 된다. 바로크 정원을 몹시 혐오 했던 그는 목가 속에 묘사된 정경과 로랭의 그림에서 얻은 영감을 버무려 부드러운 곡선이 지배하는, 모든 바로크 적인 요소를 배제한 전혀 색다른 정원을 만들어 새 시대의 막을 연다. 고대로부터 그 때까지 정원의 구성은 늘 기하학을 따랐다. 중세의 수도원정원도, 심지어는 농가의 정원도 사분법에 의한 기하학 정원이었다. 이제 처음으로 기하학의 틀에서 벗어난 정원이 탄생한 것이다. 혁명이 따로 없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는 말이 유명세를 탔다. 너도 나도 이제는 풍경식으로 정원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우선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18세기 말경에 대륙으로 건너간 뒤 특히 독일의 퓌클러 공이나 르네 같은 대가에 의해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풍경식 정원은 바로크 정원과 달리 조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잔디밭에 키가 30미터 쯤 되는 아름드리나무가 한 그루 그림처럼 서 있고 넓은 호수와 그 뒤로 펼쳐지는 깊은 숲의 정경은 쉽고 빠르게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기다리고 끈기 있게 다듬어 장면 장면을 연출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삼십년 정도 공을 들여야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신과 만나는 장소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에덴동산에서 나무 뒤로 숨는 장면이 나온다. 아직 쫓겨나기 전의 일이었다. 인간들이 숨었다는 사실보다 이 때 마침 신이 에덴동산을 거닐고 계셨다는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당시 하나님이 먼 우주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신 것이 아니라 동산 안에서 친히 거닐었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을 때 신과 인간은 에덴동산을 사이좋게 나눠썼던 것 같다. 얼마나 근사한 상황 인가. 인간이 이런 상황을 되찾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역사가 거듭될수록 에덴동산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조바심이 17, 18세기에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에덴동산과 같은 곳을 만들어 신이 그 곳에 거하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삼십년 이상의 세월을 참고 인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원 안에서 정원사인 신과 대화하는 것”이 정원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철학자 세이프스베리Shaftesbury는 말하고 있다. 그는 자유의지의 상징으로 시작된 풍경식 정원에 ‘도덕성’ 하나를 더 부여한다. 윤리강령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재회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선한 장소로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선한 장소란 곧 자연 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서 정원은 자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정원의 상관관계가 이 때야 비로소 성립되었다. 정원에 철학적 이념이 강하게 뒷받침 되었던 것도 이 시대의 일이었다. 정원에 도덕성을 부여한 것은 루소도 마찬가지다. 그는 에밀이라는 소설을 통해 타락한 정신을 치유하는 장소로 정원을 정의하고 있다. 지금 많이 거론되고 있는 치유정원이나 원예치료도 따지고 보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닌 듯하다. 풍경식 정원은 오랜 세월 유럽을 지배한다. 거의 20세기 초까지 지속되는 동안 초기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예외 없이 형식주의의 그물에 빠지게 된다. 세이프스베리나 루소가 얘기했던 이념의 알맹이는 빠지고 타성적으로 도면 위에 곡선을 그리는 지루한 단계에 도달한다. 그러던 중 19세기 중엽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로 탄생한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노쇠한 정원이 신대륙에서 젊음을 되찾았다고나 할까. 혹은 새로운 소명을 받은 것이라고 할까. 이렇게 풍경식 정원은 서민들의 낙원인 공원park으로 거듭나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 고정희, 서구 근대조경의 탄생과 변화,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나무도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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